여행

화성 용주사

로제로제 2015. 9. 25. 08:45

효심으로 세운 절 - 화성 용주사(龍珠寺)

 

 용주사(龍珠寺) -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용주사 자리에는 원래 서기854년(신라 문성왕 16년)에 세운 갈양사(葛陽寺)가 있었다.

잦은 병란으로 갈양사(葛陽寺)가 불타 없어진 자리에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正祖)가 1790년 경기도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장헌세자(莊獻世子 - 사도세자)의 수은묘()를 화산(花山)으로 옮긴 후, 현륭원(顯隆園)으로 승격(나중에 융릉으로 재차 승격)하여 그 능사(陵寺)로서 용주사를 세우고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당시 이 사찰을 세우기 위하여 전국에서 시주 8만 7천 냥을 거두어 승려 보경(寶鏡)으로 하여금 4년간의 공사 끝에 완공하게 하였는데, 낙성식 전날 밤 정조(正祖) 임금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꿈을 꾸어 용주사(龍珠寺)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창사(創寺)와 동시에 팔로도승원(八路都僧院)을 두어 전국의 사찰을 통제하였으며, 보경(寶鏡)에게는 도총섭(都總攝)의 칭호를 주어 이 절을 주재하게 하였다.

용주사는 효행의 본찰로서 불심(佛心)과 효심(孝心)이 한데 어우러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용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本寺)로서 경기도 남부지역 100여개의 말사(末寺)와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용주사 사천왕문(四天王門)

사천왕문은 천왕문이라고도 합니다.

 

사천왕(四天王)은 원래 고대 인도종교에서 숭앙하던 신들의 왕이었으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여 부처와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천왕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 지점의 동서남북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인간의 선악을 관찰한다고 한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방을 나타내는 오행색(五行色)인 청색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검은빛을 띠며 비파를 잡고 줄을 튕기는 모습을 하고 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붉은빛을 띤 몸에 오른손에는 용을 움켜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용의 입에서 꺼낸 여의주를 쥐고 있다.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몸이 흰빛이고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삼지창과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경전에 따라 다소 설명의 차이가 있읍니다.)

 

매표소

 

개인요금

어른 1,500원  청소년 1,000원  어린이 700원

 

단체요금(30명 이상)

해당 개인요금에서 각 200원씩 할인

 

무료입장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증 소지자. 7세미만 어린이. 경로우대증 소지 노인.

 

 화성 용주사 오층석탑(華城 龍珠寺 五層石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2호 - (지정일: 2009.3.10)

시대: 고려시대

 

(효행박물관 앞에 위치)

  

 용주사 효행박물관

정조대왕이 출간한 불설부모은중경 판본을 비롯하여 보물 제1095호 봉림사 아미타불복장유물, 정조대왕의 친필인 용주사 봉불기복게, 김홍도의 사곡병풍 등 용주사가 소장하고 있는 격조 높은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 - (원래의 명칭)

지정 명칭: 전적수사본(典籍手寫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4호 - (지정일:1972.05.04)

어제 화산 용주사 봉불기복게(御製花山龍珠寺奉佛祈福偈)는 1796년 5월 정조(正祖) 임금이 용주사 부처님을 받들고 복을 기원하기 위해 직접 쓴 게송입니다.

 

정조(正祖)는 용주사 봉불기복게에서,

“절은 현륭원의 재궁(齋宮)으로 건립하였습니다. 소자(정조)는 팔만 사천 법문의 경의(經義)를 베껴 쓰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삼가 게어(偈語)를 지어 삼업(三業)의 공양을 본받고 은혜에 보답하는 복전을 짓습니다.”라 하며

“부모에게는 길러주신 은혜가 있으니 공경으로써 공양하면 이것이 바로 보은의 길”이라 하였습니다.

 

정조의 수많은 글 중에서도 부처님에 대한 칭송과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잘 담고 있습니다.

 

 효행박물관 내부

 

부모은중경도

정조는 당대 신필로 일컫는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를 매우 아꼈다고 한다.

정조임금은 용주사를 세울 무렵 김홍도에게 부모은중경을 주고 용주사에 머물게 하였다.

김홍도는 이곳에 머물며 7일간 기도를 한 후, 정조가 내려준 부모은중경을 그림으로 그렸고 이 그림을 목판 및 석판 등으로 만들어 보존· 전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박물관 내부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상사화 - (용주사 경내에서 2015.8.19 촬영)

 

상사화 - (용주사 경내에서 2015.8.19 촬영)

'꽃무릇'을 보고 '상사화'라고 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꽃무릇'과 '상사화'는 엄연히 다른 꽃입니다.

  

 용주사 경내 풍경

 

용주사 홍살문

조선시대 마지막 원찰(願刹)인 용주사는 사도세자(장헌세자)와 정조대왕의 위패를 모신 능침사찰이다.

왕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에 경건한 마음을 지니도록 하기위해 홍살문을 세웠다.

  

 용주사 삼문(三門)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궁궐이나 서원(書院)의 문(門) 건축양식입니다.

좌우에 7칸의 행랑을 지닌 맞배지붕 양식으로 동서의 옆문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삼문(三門)이라 부릅니다.

 

가운데 문은 평소에는 닫혀 있다가 정조임금 행차 때에만 열렸겠지요...

맨땅을 걷게 할 수는 없었겠기에 정조 임금을 위해 길에 돌을 깔았는데 돌을 깐 길은 사도세자(장헌세자)의 위패가 모셔진 호성전(護聖殿)까지 이어집니다.

   

용주사 삼문(三門) 앞에는 화마(火魔)를 막아준다는 해태 석상(石像) 한 쌍이 놓여 있습니다.

 

용주사 삼문 기둥에 각각 "용(龍)·주(珠)·사(寺)·불(佛)"의 첫 글자로 시작되는 4개의 주련이 있습니다. 

 

용주사 삼문(三門) 주련

     蟠華雲 (용반화운)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었다가

 珠得造化 (주득조화)  여의주 얻어 조화 부리더니

 寺門法禪 (사문법선)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下濟衆 (불하제중)  부처님 아래 중생을 제도하네

 

 용주사 삼문(三門)에 걸려 있는 용주사(龍珠寺) 편액

 

竹儂 安淳煥(죽농 안순환: 1881~1950)이 1924년에 쓴 글씨이다.

‘禪宗刹大本山’

‘世尊 應化二千九百五十一年仲秋 以應 姜松屋大和尙雅囑 奉獻龍珠寺佛展 竹儂 安淳煥’이란 관지와 도서 2과가 있다.

죽농은 宮內府 奏任官(궁내부 주임관)이자,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드나들던 요릿집 명월관(明月館)을 운영하였다고 한다.

 

화성 용주사는 한국 33관음성지(觀音聖地) 중 제3호 사찰입니다.

 

불음각(佛音閣)

불음각 내부의 범종은 근래(1985년)에 만들었지만 그 소리는 매우 아름답다고 합니다.

 

용주사 천보루와 오층석탑

 

용주사 천보루 (龍珠寺 天保樓) - 경기문화재자료 제36호 (지정일: 1983년 9월 19일)

시대: 조선

1790년(정조 14년) 정조가 장헌세자(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세웠을 때 함께 세운 천보루는 대웅보전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문루(門樓)이다.

초석이 기둥같이 높아 궁궐의 누각처럼 웅장한 천보루의 양옆으로는 사대부집의 행랑채 같은 요사채가 길게 늘어서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전면으로 1칸만큼 돌출시켰다.

나머지 2칸을 양옆의 요사채와 바로 연결시켰으며, 뒤쪽 좌우에 누(樓)의 마루로 오르는 계단을 두었다.

대웅보전 쪽에서 보면 천보루는 단층 건물로 보인다.

 

 

용주사 천보루 오층석탑 (塔)

천보루 앞의 오층석탑에는 1702년(숙종 28년) 고승(高僧) 성정(性淨)스님이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를 사리병에 담아 봉안하였다고 한다.

 

 천보루(天保樓) 2층 내부에 걸려 있는 목어(木魚)

 

목어(木魚)는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板) 등과 함께 불전사물(佛殿四物)에 속하며, 목어고(木魚鼓)· 어고(魚鼓)· 어판(魚板)이라고도 불린다.

물고기는 언제나 눈을 뜨고 깨어 있으므로 그 형체를 취하여 나무에 조각하고 침(打)으로써 수행자의 잠을 쫓고 혼미를 경책했다고 하였다.

 

사찰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옛날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옳지 못한 행동을 하다가 죽었다.

그 승려는 곧바로 물고기의 과보를 받았는데, 등에는 나무가 한 그루 나서 풍랑이 칠 때마다 나무가 흔들려 피를 흘리는 고통을 당하곤 하였다.

마침 그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물고기로 화현한 제자가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를 해탈하게 하였다.

물고기는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등에 있는 나무를 고기 모양으로 만들어 모든 사람들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도록 했다고 한다.

 

사찰에서는 새벽예불과 저녁예불, 큰 행사가 있을 때 범종 등과 함께 목어를 치게 되는데, 이는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 형태도 처음에는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었으나 차차 용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취한 용두어신(龍頭魚身)의 형태로 변형되었고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태를 취한 것도 있으며 보통 채색을 입히는 경우가 많다.

 

대웅보전 쪽에서 바라보는 천보루(天保樓)에는 '홍제루(弘濟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홍제루(弘濟樓)'의 '홍제(弘濟)'는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홍제루(弘濟樓)' 편액은 서예가 차우 김찬균(此愚 金瓚均)의 글씨입니다.

  

 용주사 대웅보전 (龍珠寺 大雄寶殿) - 경기 문화재자료 제35호 (지정일: 1983.9.19)

시대: 조선

 

용주사(龍珠寺)는 현륭원(顯隆園)의 건립과 때를 같이 한 왕실의 원찰로 각 부재의 사용이나 문양, 공간배치가 궁궐에서 쓰는 건축기법을 많이 이용하였다.

1790년(정조 14년) 전체 145칸의 규모로 지어졌는데 창건당시의 규모나 형태가 거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18세기말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정조는 이 절을 자신의 꿈 내용대로 '용주사(龍珠寺)'라 이름 짓고 중심전각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의 현판을 직접 쓰기도 했다.

 

 정조 임금이 친필로 쓴 용주사 대웅보전(大雄寶殿) 편액

 

화성 용주사 대웅보전 목조삼세불 좌상 (華城 龍珠寺 大雄寶殿 木造三世佛 坐像)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14호 - (지정일: 2009년 3월 10일)

시대: 조선

 

대웅보전 내부의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오른쪽에 동방 약사여래불, 왼쪽에 서방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습니다.

세 부처님은 각기 다른 스님들이 조각하였습니다.

 

(이 사진을 촬영한 날(2015.9.8)은 마침 문화재 관계관들이 나와 불상의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용주사 대웅보전 후불탱화 (龍珠寺 大雄寶殿 後佛幀畵)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호 (지정일: 1972년 5월 4일)

시대: 조선

크기: 가로 350cm, 세로 440cm

 

용주사 대웅보전의 후불탱화는 삼존불상 뒤에 있는 커다란 불화로, 용주사 창건 당시에 그려진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을 그린 탱화이다.

크기는 가로 350cm, 세로 440cm이다.

불화에 여백이 적은 것은 불법의 세계가 법과 지혜로 충만한 완전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필선(筆線)은 비교적 딱딱한 편이나, 모든 존상의 얼굴과 손에 서양화의 음영법을 도입하여 그렸다.

조선 후기 불화로서 독특한 음영법을 사용한 경우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보이는 특징으로 주로 이 시기에 경기 지역에서 활동한 화파(畵派)의 작품에서 보이는 표현수법이다.

 

이 후불탱화(삼세여래불화) 속에는 왕실 축원문이 들어있다.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 - 정조(正祖)

                    자궁저하수만세(慈宮邸下壽萬歲) - 혜경궁 홍씨(정조의 어머니)

           왕비전하수만세(王妃殿下壽萬歲) - 효의왕후(정조의 비)

        세자저하수만세(世子邸下壽萬歲) - 순조(정조의 아들)

 

용주사 대웅보전 후불탱화는 김홍도가 그렸던 원래의 후불탱화가 아니라, 조선 말기에 이를 모본삼아 다른 화승(畵僧)이 새로 그린 그림일 것으로 추정된다.

 

 

 용주사 대웅보전 내부의 불화(佛畵)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감로탱화, 삼장탱화와 보현보살상(像), 관음탱화와 관세음보살상(像), 신중탱화

 

 

  조선은 개국(開國)부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숭유배불(崇儒排佛)정책을 취하였고 정조임금도 즉위하면서 나라의 모든 원당(願堂)을 혁파하였지만,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를 기리며 극락왕생을 발원하기 위한 원찰(願刹)인 용주사(龍珠寺)를 세운 효심(孝心)은 나라의 정책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정조임금의 회양나무가 심어져 있던 자리

정조는 용주사  창건을 기념하기 위해 용주사 대웅보전 앞마당에 회양나무를 심었습니다.

정조가 손수 심은 회양나무는 한때 천연기념물 제264호 용주사 회양나무로 지정된 적도 있으나 현재 나무는 죽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기념석만 남아 있습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 내부에는 국보 제120호 용주사 범종 (龍珠寺 梵鐘)이 있습니다.

(자료 사진) - (2015. 6. 29 ~ 9. 26까지 용주사 범종각 해체보수공사 중)

     

 

용주사 범종(龍珠寺 梵鐘) - 국보 제120호 (지정일: 1964년 3월 30일)

시대: 고려

 

국보 제120호인 이 범종은 상원사 동종,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범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종의 양식을 충실히 갖추고 신라 동종 양식을 빌어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범종이다.

크기는 작지만, 종의 모양새나 문양의 예술성이 뛰어나고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동종의 고리역할을 하는 용뉴는 용이 힘차게 종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다.

종의 몸체 표면에는 전 후에 비천상(飛天像), 좌 우에 삼존상(三尊像)과 4개소에 당좌(撞座)가 조각되어 있다.

비천상과 삼존상은 모두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형상으로 천의(天衣)자락이 휘날리고 있다.

종신(鐘身) 2개소에 새겨진 명문은 후대에 새겨진 것이다.

 

 하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 행사 (용주사 2015.8.30)

 

나유타료(那由他寮)와 만수리실(曼殊利室)

 

나유타료(那由他寮)

나유타료(那由他寮)는 평안도 묘향산 보현사(普賢寺) 의섭(儀涉)스님이 도편수를 맡아 지었다.

만수리실과 마주보고 있으며 창건 당시 승당(僧堂)으로 불렸다.

현재는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고 있다.

 

만수리실(曼殊利室)

만수리실(曼殊利室)은 강원도 간성 건봉사(乾鳳寺) 운붕(雲朋)스님이 도편수를 맡았다.

원래 선당(禪堂)이라 하여 선방으로 사용한다.

건물의 구조는 민가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어 특이하다.

 

 용주사 경내

 

 지장전(地藏殿)

지옥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지장전 내부

지장전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저승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법고각(法鼓閣)

 

용주사 호성전(龍珠寺 護聖殿)과 부모은중경탑

호성전은 정조대왕의 아버지인 장헌세자(사도세자)와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과 효의왕후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용주사는 정조가 부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기 때문에 일반사찰과는 달리 ‘효(孝)’와 관련된 건물과 유물이 많은데, 호성전도 그런 곳 중 하나이다.

내부 벽에 ‘부모은중경’의 내용이 도배되어 있으며, 건물 밖에 부모은중경탑이 세워져 있다.

 

부모은중경의 해설 내용은 생략하고 그 제목만을 간추리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10가지

 

        회탐수호은(懷耽守護恩) 아이를 잉태하고 수호해 주신 은혜

임산수고은(臨産受苦恩) 낳으실 때 고통 받으신 은혜

          생자망우은(生子忘憂恩) 자식을 낳고서야 근심을 잊으신 은혜

                  인고토감은(咽苦吐甘恩) 쓴 것은 삼키고 단것은 뱉어 먹여주신 은혜

                       회건취습은(回乾就濕恩) 마른자리에 아기 뉘고 젖은 자리로 누우신 은혜

         유포양육은(乳哺養育恩) 젖 먹이고 사랑으로 길러 주신 은혜

         세탁부정은(洗濁不淨恩) 더러운 것을 깨끗이 씻어 주신 은혜

         원행억념은(遠行憶念恩) 멀리 길 떠나면 근심 걱정하신 은혜

        위조악업은(爲造惡業恩) 자식을 위하여 궂은일을 하신 은혜

        구경연민은(究竟憐愍恩) 끝까지 자식을 사랑해 주시는 은혜

 

 시방칠등각(十方七燈閣)

칠성과 산신, 독성이 탱화로 모셔진 곳으로 시방칠등각은 칠성각(七星閣)의 다른 이름입니다.

 

천불전(千佛殿)과 내부 모습

천(千) 분의 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며 누구나 수행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법화경(法華經)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

  

효림당

지하층은 공양간을 겸하고 있습니다.

 

 조지훈(薰) 시인의 "승무" 시비(詩碑)

  

시인 조지훈(趙芝薰 1920.12.3 ~ 1968.5.17)은 1938년 용주사에서 영혼의 고뇌를 춤으로 승화시킨 승무(僧舞)를 참관하고 영감을 얻어 시(詩) “승무”를 지었다.

이런 연유로 용주사 경내에 “승무” 시비(詩碑)를 세우게 되었다.

 

 용주사 경내 모습

 

 용주사 경내 꽃들

 

 관음전(觀音殿)과 내부 모습

각종 법회를 진행하는 곳이며 효행교육원(孝行敎育院)을 겸하고 1층에는 종무소가 있습니다.

 

 전강 대종사 사리탑 (田岡 大宗師 舍利塔)

전강 큰스님은 만공선사의 법맥을 이어 불조의 혜명을 밝힌 한국불교의 큰스승이다.

2005년 열반 30주기를 맞이 하여 사부대중의 뜻을 모아 수행과 위덕을 기리는 사리탑을 조성하였다. 

 

 효행문화원 (템플 스테이 전용관)

템플스테이를 통해 전통불교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휴식과 삶의 지혜를 배우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며, 각종 문화강좌도 상설 운영하고 있다. 

 

 

 

화성 용주사를 담기 위하여 3차례(2015.8.19,  2015.8.30,  2015.9.8)에 걸쳐 이 절에 갔었습니다.

일부 사진장면은 이 게시글의 게재시점에 비추어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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