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촌 한옥마을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자리한 한옥마을은 예로부터 권문세가들의 주거지였던 곳으로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北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축대를 사이에 두고 윗동네에는 한옥마을이 있고 아랫동네에는 현대식 거리가 어우러져 현대와 과거의 정다운 공존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한옥마을답게 아담한 정자로 꾸며져 있는 쉼터
주민이 실제 거주하는 지역에 많은 관광객이 내왕하므로 조용히 해줄 것을 당부하는 현수막
북촌 1경
돌담 너머로 보이는 창덕궁 전경
북촌문화센터에서 나와 창덕궁1길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면 펼쳐집니다.
인근에 관광객을 실어 나르며 안내도 해주는 관광자전거들도 있습니다.
북촌2경
원서동 공방길
창덕궁 돌담길을 따라가면 다다르는 골목 끝.
왕실의 일을 돌보며 살아가던 사람들이 거주했던 곳입니다.
석정 보름우물
20세기 초 서울에 상수도시설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전, 우물은 주된 음수(飮水), 생활용수 공급원이었으며 이곳 석정 보름우물도 북촌 주민들의 중요한 음수원이었다.
석정 보름우물은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지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맛이 좋기로 소문났었으며, 이 우물물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인근 궁궐 후궁들도 몰래 떠다 마시며 아이 낳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1794년 중국에서 압록강을 건너온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주문모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마티아) 집에 지내면서 조선 땅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였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1845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안드레아) 신부도 이 지역에서의 짧은 사목기간동안 이 물을 성수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들이 발생하자 갑자기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용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천주교 가회동(嘉會洞) 성당 이모저모
가회동 성당은 한옥건물입니다.
사진 오른쪽 위: 김대건(안드레아) 신부 상(像)
북촌3경
가회동 11번지 일대
아름다운 한옥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한옥마을의 도시가스나 전기계량기함 덮개
북촌4경
가회동 31번지 언덕
가회동 31번지 일대를 볼 수 있는 곳은 사설전망대(입장료 3천원인데 커피 등 음료수 제공)에서만 가능.
많은 기와지붕과 함께 북촌 꼭대기 이준구 가옥까지 볼수 있다.
이준구 가옥 (李俊九 家屋) -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일: 1991년 5월 28일)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북촌로11가길 49 (가회동 31-1)
높은 석축 위에 세워진 대지 600평, 건평 178평의 2층 양옥으로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지어졌다.
설계자는 알 수 없으며 개성 송악의 신돌인 화강암과 프랑스 기와를 사용하였다.
개화기 서양식 상류계층의 주거가옥으로 정원수와 석탑 등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북촌5경(골목길 오름)과 북촌6경(골목길 내림)
북촌5경(골목길 오름)은 한옥 지원사업으로 한옥이 잘 보전되어 있으며,
북촌6경(골목길 내림)은 한옥 지붕 사이로 서울 시내 전경이 보인다.
청기와집
북촌7경
가회동31번지
고즈넉한 분위기와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소박한 골목.
복정(福井) 우물
복정(福井)은 조선시대 물이 맑고 맛이 좋아 궁중에서만 사용하던 우물이다.
평상시에는 뚜껑에 자물쇠를 채우고 군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하여 일반인들의 사용을 금했으나, 대보름에는 이 물로 밥을 지어 먹으면 일 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하여 일반인들도 물을 길을 수 있게 하였다.
- 안내문에서 -
북촌8경
삼청동 돌계단길
북촌로5나길에서 삼청로로 내려가는 돌계단길.
커다란 암반 하나를 통째로 조각한 돌계단이 독특하다.
치과
'이 해박는 집'이라는 옛 한글표기방식의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북촌 한옥마을의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