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큐슈 시(北九州市) 모지코(門司港)
일본 후쿠오카 현(福岡県) 기타큐슈 시(北九州市) 모지코(門司港) 항구
고쿠라 역(小倉驛)
숙소가 고쿠라 역(小倉驛) 인근이어서 전철로 2정거장 거리에 있는 모지코(門司港) 항구를 향해 출발...
고쿠라 역(小倉驛) 앞의 조형물 - (祇園太鼓)
고쿠라 역(小倉驛) 앞에 조성된 화단에서...
(후원업체들이 자기들 업체의 홍보도 겸할 목적으로 화단을 구획 별로 나누어 관리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쿠라 역(小倉驛) 내부
모지코(門司港)는 고쿠라 역(小倉驛)에서 전철로 2정거장 거리에 있습니다.
모지(門司) 역과 모지코(門司港) 역을 혼동하는 한국인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고 하더군요...
모지코(門司港) 항구로 갈 전철열차
금방 모지코 역입니다.
모지코 역의 증기기관차 바퀴(主動輪)
大正(다이쇼오) 8년(1919년) 4월에 제작된 증기기관차의 바퀴(主動輪)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모지코 역의 “길 떠나는 종(旅立の鐘)”과 “행복의 샘(幸福の泉)”
“행복의 샘” 가운데에는 동전들이 많이 던져져 있었구요...
인력거(人力車)
모지코 역 구내매점
모지코 역사의 보수공사 작업장 울타리 장식
모지코 역사(門司港 駅舍) 건물 (자료 사진)
1891년(明治 메이지 24년)에 독일인 기술자 헤르만 루무슈테루의 감수아래 르네상스 양식 2층 목조건물로 지어졌습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현대적이었으며 수세식 화장실과 청동 수도꼭지, 대리석 타일, 남성용 소변기 등 내. 외부가 화려한 건물이었습니다.
1988년 12월19일 국가지정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보수공사 중이며 2018년 3월말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가건물을 역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가지정중요문화재 - 三井俱楽部 건물
(자료 사진)
자신이 태우고 온 관광객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는 인력거꾼
宮本武藏(미야모토 무사시)와 佐々木小次郎(사사키 코지로)가 결투를 벌인 간류우지마(厳流島)를 돌아보는 관광유람선 선착장
門司港(모지코)와 関門橋(칸몬교)
연락선은 떠난다...
서둘러 낚아야 친구들과 한잔 하는 건데...
세월을 낚는 낚시꾼들
칸몬해협(関門海峡)에 면한 門司港(모지코)
門司港(모지코)와 関門橋(칸몬교)
모지코(門司港)는
1889년 (明治 메이지 22년) 11월에 국가의 특별 수출항구 (쌀 · 보리 · 밀가루 · 석탄 · 유황에 한정한 수출항구)로 지정된 이후 금융기관과 상사(商社) · 해운회사의 지사들이 잇따라 진출하여 외국항로의 거점 및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당시에는 간몬해협(関門海峡)을 횡단하는 터널이나 교량은 아직 없었고 간몬(関門) 연락선의 출발지이었기 때문에 규슈(九州)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었다.
1942년 (昭和 쇼와 17년) 7월에 간몬(関門) 철도터널이 개통되면서 모지코(門司港) 역을 거치지 않고 혼슈(本州)와의 왕래가 가능하게 된 것과 전후 중국 등의 대륙무역 두절 등으로 급속히 그 지위를 잃어 갔다.
그러다가 1988년에 모지항(門司港) 역사(駅舎)가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역사적 건축물을 살린 관광지로서의 정비가 진행되어 현재는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찾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있다.
門司港出征の碑(모지 항 출정의 비)
여기 모지 항(門司港)에서 만주사변 이래 대동아전쟁에 이르기까지 200만이 넘는 장병이 출정하여 그 가운데 반 수인 100만이 다시는 고국땅을 밟지 못한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건립된 비(碑)입니다.
침략전쟁으로 인해 우리나라나 중국과 동남아 여러 나라 국민들은 많은 고초를 겪었고 커다란 상처를 입었습니다.
군마(軍馬)에게 물을 먹였다는 곳.
만주사변이 발발한 이래 제2차 세계대전에 걸쳐 이 모지 항(門司港)에서 남방과 대륙으로 100만에 이르는 군마가 전장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말(馬)에게 작별의 물을 먹인 곳이지요.
여러 개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 한 곳만이 남아있습니다.
건축공사장 울타리의 환경미화
모지코(門司港)에서 다시 고쿠라(小倉) 역으로 돌아갑니다.
帰り水(카에리미즈)
1914년에 설치된 수도로 왕년의 모습이 남아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모지코(門司港)는 장거리 뱃길의 하선항구이었기에 여행에서 돌아오는 사람, 전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병들이 이 물로 목을 축였다고 해서 帰り水(카에리미즈 - 귀가의 물)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지금은 손을 씻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늦은 점심식사
일편단심 / 조아람 연주
마음이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