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김제 금산사

로제로제 2017. 2. 25. 01:25

 

김제 금산사(金山寺) 

미륵 할매 석상(石像)을 모신 사당

금산사로 들어가는 길 왼쪽에 이름도 없는 조그만 건물이 한 채 있는데 건물 내부에는 몸통과 머리를 이어붙인 '미륵 할매'라고 불리는 석상(石像)이 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복을 비는 곳으로, 물론 사찰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금산사 매표소

입장료 성인 개인 3,000원 (단체 2,500원)

청소년. 군인 2,000원 (단체 1,5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 800원)

 

개화문(開化門)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에 이르기 전에 근년에 건축한 성문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아치형의 석문(石門) 형태만 남아 있었고 홍예문 또는 석성문, 견훤문이라고도 불렀는데 금산사로 들어가는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금산사에 한때 유폐되었던 후백제 견훤왕 당시 금산산성(金山山城)의 성문이었습니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우면서 스스로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라 자처하며 민심을 얻고자 하였지만, 끝내는 그 아들들에 의하여 미륵신앙의 요람인 이곳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고려의 왕건에게 귀순하였습니다.)

 

개화문(開化門)을 지나면 88인(人)의 애국지사 충혼비도 있습니다. 

 

 

모악산 금산사 일주문 (母岳山 金山寺 一柱門)

소재지: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금산리 39)

 

일주문은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一心)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현재의 일주문은 2004년에 신축하였습니다.

 

금산사(金山寺)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599)에 창건되었으며, 신라의 고승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을 통해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금산사에서 수행하던 진표율사는 17년 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았다고 한다.

이후 금산사로 돌아와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것도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고려 문종 33년(1097) 때에는 총 86동 43개 암자를 설치하며 전성기를 이루었으며, 고려 초 후백제의 신검이 아버지인 견훤을 유폐시켰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금산사는 처영 뇌묵대사가 1,000여 명의 승군을 조직한 승병의 거점지로 활용되면서 82개 전각과 43개의 암자 등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금산사에는 국보 1점과 보물 10점이 있습니다.

 

금산사 템플스테이 건물

 

동안거 회향(해제) 생명살림기도법회에 참가 중인 불자들 

 

해탈교

다리 밑으로 금상천의 지류(支流)가 흐르고 있습니다.

 

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사찰에서는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았는데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간(竿)이라 하며, 장대를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돌기둥을 지주(支柱)라 한다.

우리나라 당간지주 중에서도 가장 완성된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신라시대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8세기 후반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금강문(金剛門)

금강역사(金剛力士)는 불교의 수호신이다.

대체로 불탑 또는 사찰의 문 양쪽을 지키는 수문신장(守門神將)의 역할을 담당하며 인왕역사(仁王力士)라고도 한다.

 

 

왼쪽에는 나라연금강(아금강)을,

오른쪽에는 코끼리의 100만 배 힘을 가졌다는 밀적금강(훔금강)을 모셨다.

 

(사진 왼쪽)

나라연금강

나라연은 천상의 역사(力士)로서 그 힘은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입니다.

보현동자

보현보살이 동자(童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우협시보살로 진리의 광대행을 맡고 있으며, 행원의 실천을 나타내기 위하여 코끼리를 타고 있습니다.

 

(사진 오른쪽)

밀적금강

금강저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신장입니다.

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서적을 들으려는 서원을 세웠습니다.

문수동자

문수보살이 동자로 화현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좌협시보살로 지혜를 맡고 있으며,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자를 타고 있습니다.

 

천왕문(天王門)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전각이다.

외호신이란 불국정토의 외곽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며 동. 서. 남. 북 네 곳을 지킨다.

이 천왕문은 1994년에 가람을 중수하면서 새롭게 중수했다.

 

사천왕(四天王)은

북방(北方)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 비파를 들고 있으며

동방(東方)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 보검을 들고 있고

남방(南方)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 용(龍)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서방(西方)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 삼지창과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금산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1997년에 2층 규모로 중수하였다.

 

보제루(普濟樓)

2 누각식 건물로서 아래층은 절 앞마당으로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잦은 외침에 따라 승군(僧軍)이 조직되고 금산사가 승병의 결집장소가 되면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누각이 세워졌다.

이후 누각건물은 법회와 강설(講說), 그리고 대중집회의 장소로 사용되었다.

1975년에 신축하여 1997년에 중수하였다.

 

금산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本寺)입니다.

 

금산사는 한국 33관음성지 제7호 사찰입니다.

 

금산사의 귀중한 보물을 소개하면...

1. 국보 제62호 미륵전

2. 보물 제22호 노주

3. 보물 제23호 석련대

4. 보물 제24호 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5. 보물 제25호 오층석탑

6. 보물제26호 방등계단

7. 보물 제27호 육각다층석탑

8. 보물 제28호 당간지주

9. 보물 제29호 북강삼층석탑

10. 보물 제827호 대장전

11. 보물 제828호 석등

 

범종각(梵鐘閣)

이 종각은 원래 미륵전 앞에 위치해 있었으나 일제 때 범종이 징발 당하여 종각만 있다가 1978년 범종을 주조하였으며 1983년 현 위치로 옮겨 신축하였다.

 

종(범종 梵鐘)은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고

북(법고 法鼓)는 가축이나 짐승을 제도하며,

운판(雲版)은 공중을 떠도는 영혼, 특히 새의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고

목어(木魚)는 물고기들의 영혼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통전(圓通殿)

대자대비 관세음 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관음보살이 주원융통(周圓融通)하게 중생의 고뇌를 씻어 주는 분이라는 뜻에서 원통전(圓通殿)이라고 한다.

 

대장전(大藏殿) - 보물 제827호

진표율사가 미륵전을 짓고 이를 장엄하는 정중(庭中) 목탑으로 세웠으며 창건 당시엔 미륵전의 가운데에서 우측에 세워진 목탑(木塔)이었던 것을 지금과 같은 전(殿)으로 변형하면서 대장전이라 이름을 지었고 1922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지붕 위에는 통일신라 때 목탑의 양식인 복발(覆鉢 - 탑의 맨 윗부분에 바리때를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부분)과 보주(寶珠)가 안치되어 있고 내부에는 석가모니불, 가섭존자, 아난존자를 모셨다.

 

석등(石燈) - 보물 제828호

대장전 앞에 있다.

고려 때 조성되었으며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고 전체 높이는 3.9m이다.

원래 미륵전 앞에 있었으나 대장전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사찰 속으로 옮겨 놓은 전각이며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이 전각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고, 유명계의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기에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하여 무독귀왕, 도명존자를 봉안했는데, 지장보살은 왼손에 금강보륜을 쥐고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대적광전은 연화장세계의 주인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다.

화엄종의 맥을 계승하는 사찰에서는 주로 이 전각을 본전으로 건립하며, "화엄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하여 화엄전, 비로자나불을 봉안한다고 해서 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시대 건물이었으나 1986년에 화재로 전소된 후 1994년에 본래되로 복원하였다. 

(화재 이전에는 보물 제476호였지만 화재 후에 보물지정이 해제되었습니다.) 

 

내부에는 오여래(五如來)육보살(六菩薩)을 모셨다. 

오여래(五如來 - 사여래불, 노사나불, 비로자나불,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와

육보살(六菩薩 - 월광, 일광, 문수, 보현, 관음, 대세지)을 봉안하고 있습니다.

 

 

 

 

노주(露柱) - 보물 제22호

원래 노주는 미륵전 정중(庭中)에 있었는데 1922년에 대장전의 이전과 함께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이 석조물(石造物)은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유물이다. 

 

금산사에서 봉행된 동안거 회향 생명살림기도 법회는 4,600여 명의 불자가 동참한 대규모 법석이었습니다.

 

생명살림 법회에서 방생한 새들은 다쳐서 치료를 한 후에 보호하던 새들을 놓아준 것입니다.

황조롱이, 꿩, 비둘기, 말똥가리 등 30여 마리의 새들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을 위해 조류보호협회로부터 철저히 검증 받은 새들이라고 합니다. 

황조롱이 한 마리가 헤어짐이 아쉬운지 머뭇거리고 있네요.

 

방생은(放生)은 불살생(不殺生)을 실천하는 대표적인 불교의례입니다. 

미륵전(彌勒殿) - 국보 제62호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그분의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즉 미륵신앙의 근본도량을 사찰 속에 응축시킨 것이 미륵전이고 먼 미래의 새로운 부처님 세계에서 함께 성불(成佛)하자는 것을 다짐하는 참회와 발원의 장소이다.

 

진표율사가 건립하고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때 수문대사가 복원한 후 39척(11.82m)의 미륵불상과 29척(8.79m)의 대묘상보살과 법화림보살상을 모셨다.

1988년에 시작한 해체 보수공사가 1993년 10월 완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상(가운데)과 대묘상보살과 법화림보살 상(像)

(촬영하느라 조금 힘들었습니다.)

 

미륵전은 층마다 다른 편액이 붙어 있지만 내부는 통해 있습니다.

 

1층의 편액은 대자보전(大慈寶殿)

2층의 편액은 용화지회(龍華之會)

3층의 편액은 미륵전(彌勒殿)이라고 씌어 있습니다.

 

금산사의 미륵전은 법주사의 팔상전과 함께 우리나라 건축사의 위대한 업적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육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

탑석(塔石)의 재질이 점판암으로 된 특이한 경우인데 본래의 자리는 봉천원구가 있던 대웅대광명전의 앞마당에 있었다.

봉천원구는 혜덕왕사가 1079년(문종 33)에 절의 주지로 있으면서 창건했으므로 탑도 이 무렵에 조성된 것이라 보고 있다.

그 뒤 조선시대에 들어와 정유재란으로 봉천원구가 모두 소실되자 수문대사가 대사구, 곧 지금의 금산사를 중창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탑을 옮겨 왔다.

 

석련대(石蓮臺) - 보물 제23호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의 대좌로서 정확한 이름은 석조 연화대좌(石造 蓮花臺座)이다.

하나의 화강석으로 각 면에 조각된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

 

나한전(羅漢殿)

1993년에 새롭게 조성하였으며 석가여래삼존불과 십육나한(十六羅漢)이  봉안되어 있다.

소승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오른 나한에 대한 신앙을 하는 전각이다.

나한은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이다.

 

나한전(羅漢殿)의 문살

조사전(祖師殿)

금산사의 중창조인 진표율사부터 역대 조사 열두 분 스님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로서 새롭게 고증을 거쳐 1998년에 건립하였다.

 

삼성각(三聖閣)

1943년 건축물로 1983년 해체보수하였으며 나한전 뒤편에 있다.

삼성각은 우측에 산신(山神), 중앙에 칠성(七星), 좌측에 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이다.

산신은 재물(財物), 칠성은 수명(壽命), 독성은 복(福)을 관장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봄이 머지않은 금산사 정경

 

적멸보궁(寂滅寶宮)

건물 안에 불보살을 따로 모시지 않고 유리창을 통해 부처님 사리탑전에 예배하는 적멸보궁으로 1997년에 현재 위치로 이축하였다.

 

적멸보궁 내부

내부가 밝을 때의 모습과 내부가 어두울 때 창 밖으로 보이는 석종.

방등계단(方等戒壇) 부처님 진신사리를 안치하였으므로 불상이나 후불탱화는 없습니다.

 

적멸보궁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방등계단(方等戒壇)의 석종

 

방등계단(方等戒壇) - 보물 제26호

이 방등계단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서 수계법회를 거행할 때 사용했던 일종의 의식법회 장소이다.

불교의 정신을 대표하는 계율(戒律). 선정(禪定). 지혜(智慧)의 준말인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 가운데 계는 으뜸으로써 계를 지키는 것은 불교의 기본토대가 된다.

이 계의 정신이 일체에 평등하게 미친다는 의미로 방등계단(方等戒壇)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방등계단(方等戒壇)

 

이 곳 방등계단(方等戒壇) 위에 있던 오층석탑(보물 제25호)은 기울어져서 해체 보수공사 중에 있습니다.

 

 

 

 

금산사 경내의 석조 조형물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 해를 바라보는 젊은 커플

 

금산사 밖에는 전통찻집이 있었지만 시간관계 상 다음 기회로...

 

 

 

 

아무 것도 소유 않음이

가장 큰 소유...

 

 

비 내리는 호남선 - 조아람 전자 바이올린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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