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동학사
동학사(東鶴寺) -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학봉리 789)
동학사(東鶴寺)는 713년 당나라 스님 상원(上願)조사가 지은 상원암(上願庵)에 연원을 두고 있다.
상원암은 은혜를 갚으려는 호랑이 덕분에 여인을 만난 상원조사가 여인과 의남매를 맺고 함께 도를 닦았던 곳이다.
성덕왕 23년(724년) 회의(懷義)화상이 두 분을 기리기 위해 쌓은 탑이 현재 상원사지에 남아 있는 남매탑(보물 제1284호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1285호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이다.
회의(懷義)화상이 창건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구니스님의 불교 강원(講院)이다.
고려 태조 3년(920년)에 도선(道詵)국사가 지금의 동학사 자리에 사찰을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고려 태조 19년(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차달(柳車達)이 이곳에 신라의 시조와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사당인 동학사(東鶴祠)를 지었고, 이후 사찰이 번창하자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동학(東鶴)이라는 이름은 이 절의 동쪽에 학(鶴) 모양의 바위에서 유래한다고 전한다.
영조 4년(1728년) 신천영(申天永)의 난으로 사찰과 사당 모두가 소실된 것을, 순조 14년(1814년) 월인선사가 신축하였으며, 고종 원년(1864년) 만화 보선(普善)선사가 중창하였다.
동학사(東鶴寺)는 계룡산(鷄龍山) 국립공원 안에 있습니다.
"계룡산 동쪽에는 동학사(東鶴寺)있고 서쪽에는 갑사(甲寺)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계룡산(鷄龍山)의 유래
조선 초기에 태조 이성계가 신도안(신도내)에 도읍을 정하려고 이 지역을 답사하였을 당시, 동행한 무학(無學)대사가 산(山)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금닭이 계란을 품은 형국)이요,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라 일컬었는데 여기서 두 주체인 계(鷄)와 용(龍)을 따서 계룡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등산로와 동학사 가는 길로 나뉘는 갈림길
풍수지리로 본 계룡산
계룡산의 풍수지리는 흔히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형세라고 한다.
이는 계룡산과 주위산천의 형세가 계룡산을 중심으로 산과 물이 태극모양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예로부터 풍수지리 적으로 매우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 왔다.
백두대간 중 금남정맥(錦南正脈)의 끝부분에 위치하며 천황봉을 중심으로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의 봉우리와 동학사계곡, 갑사계곡 등의 계곡으로 형성되어있다.
예로부터 민족의 명산으로 알려져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조선시대에는 삼악(三嶽) 중 중악(中嶽)으로 봉해져서 국가의 발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지낸 곳이기도 하다.
홍살문
동학사(東鶴寺)에는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한 세조의 찬위(簒位: 임금의 자리를 빼앗음)로 원통하게 죽은 사람들을 제사 지내기 위한 사당이 있어서 홍살문을 세웠습니다.
계룡산 동학사(鷄龍山 東鶴寺) 일주문
계룡팔경 선정기념 조형물
생각하는 여인(화강석 立像) - 오른쪽
미륵반가사유상을 통하여 백제의 얼을 이으려 한 상징.
이 여인은 중생 전체를 생각하며, 모든 생명의 행복을 염원하고 있음.
부도(浮屠)
관음암(觀音庵)
길상암(吉祥庵)
미타암(彌陀庵)
미타암(彌陀庵) 주변에 핀 다알리아
동학사 범종각
동학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8호
동학사 대웅전
동학사 대웅전 주련
佛身普遍十方中 불신보변시방중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여래일체동
廣大願雲恒不盡 광대원운항부진
汪洋覺海玅難窮 왕양각해묘난궁
부처님은 시방세계 두루 계시고
삼세 부처님 다 한 분이시네
광대한 원력 항상 다함 없고
드넓은 깨우침의 바다 묘하기 그지없네
동학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동학사 대웅전 내부모습
동학사 삼성각 (東鶴寺 三聖閣) -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57호
삼성각 내부모습
동화사 경내 풍경
향적당(香積堂) - 공양간
인재문(仁在門) - 숙모전 출입문
숙모전(肅慕殿) -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67호 (지정일: 1984년 05월 17일)
소재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2(학봉리 789)
숙모전(肅慕殿)은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산의 동학사(東鶴寺) 경내에 있으며, 단종(端宗)과 충신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경내에는 삼은(三隱), 즉 포은 정몽주, 목은 이색, 야은 길재를 모시는 삼은각(三隱閣)이 있다.
매월당 김시습(金時習:1435∼1493)은 1456년(세조2) 사육신의 시신을 장례 지낸 뒤 삼은각(三隱閣) 옆에 단을 만들고 제사하였다.
2년 뒤 동학사(東鶴寺)에 들렸던 세조(世祖:1417∼1468)가 자기로 인하여 죽은 280명을 초혼각(招魂閣)에 모시도록 했다.
1728년(영조4)에 불에 타 1827년(순조27) 다시 세웠으며, 1904년(고종41)에 중건하여 고종으로부터 숙모전(肅慕殿)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현재 89위가 모셔져 있고 음력 3월 보름과 10월 24일에 추모제를 지낸다.
늦은 점심식사는 산채정식으로 하였습니다.
식당주인이 꾸며놓은 음식점 내부와 외부모습
청단풍과 어우러진 붉은 단풍
고장 난 벽시계 / 조아람 전자바이올린 연주
낙엽 떨어져...
바람인 줄 알았더니
세월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