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그땐 그랬지! [2]편

로제로제 2015. 9. 1. 21:00

사랑하라!  대한민국

 

시발택시 - 최초의 국산 자동차

1955년 8월 서울 을지로 천막 안, 손재주 좋은 최 씨 삼형제(최무성, 최혜성, 최순성)의 손에서 시발(始發)이 탄생했다.

6.25전쟁으로 깨어지고 부서진 자동차 엔진과 부품에 드럼통을 자르고 뚱땅거려서 차체를 만들고 4기통 1,323cc 엔진을 올렸다.

우리 손으로 만든 첫 국산차는 당시 8만환에 팔렸다.

시발택시는 최고 시속 85km까지 나왔고, 1963년까지 3,000대 이상 생산되어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모던한 서체로 이루어진 ‘시-바ㄹ’이라는 로고는 ‘첫 출발’을 의미하는 ‘시발(始發)’이라는 한자어를 한글풀어쓰기 방식으로 표현하였다.

 

  서울역 건물(문화역 서울284)에서는

2015년 8월 22일부터 10월 3일까지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사랑하라!  대한민국 

 

이 열리고 있습니다.

 

개관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료: 무료

 

 수학여행 갈 때는 여기 구 서울역으로 꼭 나와야했으며,

당연히 인터넷 예매제도도 없던 시절이었기에 귀성열차표 사려고 길게 늘어 앉아 기다릴 때, 긴 작대기를 든 질서유지요원이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에겐 그 작대기를 무자비하게 휘두르기도 했다.

지금이라면 큰일 날 일이지만...

 

서울 가서 돈 벌어오겠다고 무턱대고 올라오는 사람들로 인해 ‘무작정 상경’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땐 그랬지!

 

 각종 선거공보와 옛 투표함

 

 지난 날의 각종 방송장비 (KBS 출품)

큰 사진은 1930년대 독일에서 들여온 원반녹음기.

일본 천황 항복 방송녹음과 이승만 박사 육성녹음을 한 녹음기이기도 하다.

 

 1959년 제작된 국내 최초의 진공관식 라디오 A-501

2013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

금성(Gold Star)사 - 지금의 LG전자 제품.

 

 1960년 진공관식 흑백 텔레비전.

 

 술 한 잔에 시름을 잊고...

서민들의 애환과 시름을 달래주며 잠시나마 고단한 일상을 위로해 주던 지난 70년 골곡진 역사와 함께 한 술

 

 옛날 영화 구경 갑시다 

고 박노식 주연의 '마부(馬夫)'와 '로버트 태권 브이(V)' 특별상영 중 - 관람료 무료

 

사랑의 슬픔과 삶의 고달픔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대중가요

가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는 코흘리개도 흥얼거리고 다닐 정도였는데 오랜 동안 방송금지곡으로 묶여 있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해도 굳이 금지곡으로까지 취급할 필요는 없었는데...  

 

그땐 그랬지! 

 

 

 

 대중가요, 시대를 노래하다!

세계의 노래로...

 

 베스트셀러 70년

 

 반공과 안보 관련 및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포스터

 

 전화기와 휴대전화

60-70년대까지만 해도 60명이 넘는 학급에서 집에 전화기가 있는 사람은 고작 한, 두 명.

그 시절 전화는 ‘백색전화’와 ‘청색전화’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청색전화’와 달리 자유롭게 매매가 가능했던 ‘백색전화’는 권력과 부의 또 다른 상징이자 ‘재산목록 1호’였다.

서울시내 50평대 아파트 한 채 가격이 230만원 안팎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한 가격이었다.

 

그땐 그랬지!

 

전화가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서민들의 필수품으로 바뀌면서 어린 아이들까지 ‘손에 들고 다니는 전화’를 가지고 다니는 요즘은 집에 전화를 놓을 필요도 없어졌다.

서민의 애용품이었던 공중전화와 두꺼운 전화번호부 책도 사라지거나 사라진 유물이 되었다.

 

 살림살이 많이 변했습니다

경제 발전과 더불어 급속하게 변화된 의, 식, 주.

이제는 다 옛말이 되어버린 그때 그 시절

 

 시발자동차, 퍼브리카, 소방차, 포니1

 

최초의 국산 자동차인 시발택시 

모던한 서체로 이루어진 ‘시-바ㄹ’이라는 로고는 ‘첫 출발’을 의미하는 ‘시발(始發)’이라는 한자어를 한글풀어쓰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처음 생산되었을 때, 시발자동차는 잘 팔리지 않았다.

시발자동차의 판매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산업박람회였다.

이승만 정부는 1955년 10월 1일부터 12월 21일까지 광복 10주년을 기념해 창경원에서 산업박람회를 개최하였다.

이 박람회에는 시발자동차를 포함하여 총 40,739점의 물품이 출품되었는데, 박람회 폐막식에서 시발자동차는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산업박람회를 계기로 시발자동차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최무성 3형제는 이렇게 몰려든 구매 희망자들의 계약금으로 주물공장을 인수하여 양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로써 시발1호를 만들어냈던 조그마한 천막공장은 ‘국제차량공업사’라는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시발자동차는 소위 ‘빽’을 써야만 살 수 있을 만큼 인기가 있었다.

특히 영업용 택시로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시발자동차는 ‘시발택시’로 더 많이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1962년 8월 부평에 현재 GM대우의 전신인 ‘새나라 자동차공업주식회사’에서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수입하여 조립 생산한 ‘새나라’ 자동차를 판매하면서 시발자동차의 판매량은 급격히 떨어졌다.

새나라 자동차는 승승장구하였고 시발자동차는 급속히 거리에서 사라져갔다.

택시회사들은 빠르게 ‘시발’을 버리고 ‘새나라’로 갈아탔다.

1963년 말 시발자동차는 생산을 중단했다.

그때까지 시발자동차는 약 3천 대가 생산되어 전국의 가로를 누볐다.

 

 65년 만의 귀향,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6.25전사자와 실종자 16만 2천 394명,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호국 영령은 2만 9천 202명.

나머지 13만 3천 192명은 아직도 시간이 정지된 전쟁터에 남겨져 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품들

 

 6.25전사자 유가족 찾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는 6.25전사자 유해 발굴사업을 계속하는 한편, 전사자의 유가족 찾기를 위해 유전자 시료 채취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고귀한 영령에 대해서 국가는 끝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그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므로...

 

 대한민국,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현재의 서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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