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대한민국
문화역 서울284
구 서울역 건물은 사적 제28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화역-목적성 서울-지역성 284-사적번호
구 서울역 건물에서는
2015년 8월 22일부터 10월 3일까지
광복 7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사랑하라! 대한민국
이 열리고 있습니다.
개관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료: 무료
행사안내 현수막이 걸린 구 서울역 건물
구 서울역사 (舊 서울驛舍) 사적 제284호 - 지정(등록)일: 1981.09.25
소 재 지: 서울 중구 통일로 1
시 대: 일제강점기
소유자(소유단체): 문화재청
관리자(관리단체): 문화체육관광부
준공 당시만 해도 일본의 도쿄역사(東京 驛舍)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역사(驛舍) 중 1, 2위를 다툴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하면서 우리 철도의 중심 역할을 해왔으나 2003년 말 바로 옆에 완성된 고속철도 역사(驛舍)에 그 지위와 기능을 물려주었다.
서울역사 전경
건물은 서양에서 18세기 이래 유행하였던 절충주의 양식을 따랐다.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상징으로 건립된 건물은 대체로 국적이 없는 절충주의 양식을 보이는데, 서울역사도 일제가 조선과 대륙 침략의 발판으로 세운 건물이므로 절충주의 양식을 갖추었다.
옛 건물인 궁전이나 교회 건물의 여러 요소를 변형시킨 모습으로 설계되었다.
1922∼1925년에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석재가 혼합된 벽돌식 역 건물이다.
1층은 르네상스 궁전건축 기법으로 처리하고, 1층 윗부분과 2층은 붉은 벽돌로 쌓고, 부분적으로 화강석을 장식하여 마감하였다.
공사비는 모두 94만 5,000원이었는데, 경비가 모자라 원래의 설계안을 축소하여 지었다고 전한다.
1982년∼1983년에 내부를 수리하는 보수공사를 진행하면서, 일부분의 모습을 바꾸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철도역사인 이 건물은 현재 공연이나 전시회를 개최하는 문화복합공간인 ‘문화역서울 284’로 사용하고 있다.
옛 교복차림을 한 행사안내 도우미
모의역장님이 열차승차권을 모방한 입장권을 개찰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 모습이 꽤 신기한 둣...
전시회 입장용 승차권
1945년 8월 20일 미국의 시사주간지 'TIME(타임)'지 표지.
일본의 패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디자인.
광복과 해방의 기쁨도 잠깐... 곧 이어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인한 피난보따리 행렬
선생님! 어서 돌아오십시요
일본글은 알아도 우리글은 몰나요
교원은 당신의 학교로 도라가시요
이 포스터 옆에 붙여놓은 간단한 설명과는 달리,
해방직후 남북으로 갈라져 좌익과 우익의 이념대립이 극심할 때,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좌익성향의 선생님을 근무처인 학교로 돌아가도록 명령하는 포스터.
동심이 묻어나는 1960년대~1970년대 골목 풍경.
그때 그 시절
'아이스케키' 통도 보이네요.
그땐 그랬지!
연탄 때던 시절.
시멘트로 만든 쓰레기통은 꼭 있었지요.
연탄가스 중독사고도 많았고...
그땐 그랬지!
깡통을 오려 만든 어린이용 학습교재.
동동구리무(크림)통도 보이고... 외국에서 밀수입한 코티(COYY) 분도 보이네요.
큰 마누라는 열심히 일하고...
작은 마누라(첩)는 코티 분이나 바르고 있고...
그땐 그랬지!
초기의 조잡한 화장품들...
최초의 라면 - 삼양라면
사진 왼쪽의 '왈순마' 라면은 삼양라면 제품이 아니고, 롯데공업(주)의 제품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저 '왈순마' 라면 먹고 탈난 사람을 많이 보았지요.
라면 제조에 공업용 소기름(우지 牛脂)을 사용해서 '우지(牛脂) 파동'도 일어났었지요.
그땐 그랬지!
최초의 라면은 1963년에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고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60년대 초 남대문시장에서 한 그릇에 5원 하는 ‘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 선 시민들을 보고 라면개발을 결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삼양라면은 매우 생소한 먹거리였다.
60년대 삼양라면은 10원에 팔렸는데, 60년대 말 명동, 북창동 일대의 짜장면 가격은 50~70원이었고, 커피와 홍차는 35원이었다.
삼양라면은 잠깐 시장에서 사라졌다가 1994년에 재출시됐다.
농심의 ‘소고기라면’도 1970년에 출시됐다가 1999년 복고풍 바람을 타고 다시 출시된 라면이다. 닭고기맛 국물 위주였던 당시 시장에 신선한 반응을 일으켰다.
버스 안내양 - 당시 호칭은 버스 차장
아침 출근시간의 만원버스... 연약한 몸으로 온힘을 다해 승객을 떠받치는 애처로운 모습.
개문발차(승객이 너무 많이 타서 버스문을 닫을 수가 없었으므로 문이 열린 채로 출발) 사고로 차장(안내양)이 숨지는 사고도 여럿 있었다.
그땐 그랬지!
새마을 운동
근면 자조 협동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기아 마스타 삼륜차
장사를 하든, 농장을 운영하든, 저 기아마스타 3륜차가 있으면 상당한 부자라고 할 수 있었다네요.
바퀴가 3개뿐이어서 전복사고도 종종 일어났지만...
초기의 TV 수상기와 라디오
레슬링 '김일' 선수의 박치기에 환호하고 드라마 '아씨'를 보며 눈물 짓던 추억이...
그땐 그랬지!
닌텐도 게임기와 초기의 컴푸터 등
괜히 애들한테 저 닌텐도(일제) 게임기 사줘서 공부하는데 지장이 많았음.
이산가족찾기
아직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는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겪은 탓에 생이별한 이산가족을 찾으려는 열망과 안타까움과 환희...
가수 '설운도'의 노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잃어버린 30년'도 이때 갑자기 대박!
그땐 그랬지!
대한민국의 긍지를 세계에 한껏 드높인 영광의 88올림픽
당시의 마스코트는 '호돌이'와 '호순이'
현재의 서울역
그땐 그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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