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사연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 공원
산책로 입구에 서 있는 가수 주현미의 『탄금대 사연』 노래비
탄금대 사연
이병환/작사 백 봉/작곡 1985
탄금정 굽이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메는데
그 님은 어디 가고 물새만이 슬피 우나
송림이 우거져서 산새도 우는가요
가야금이 울었다고 탄금인가요
우륵이 풍류 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 진 남한강에 님 부르는 탄금 아가씨
탄금대 사연 - 노래 주현미
충주 탄금대(忠州 彈琴臺)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는 명승이다.
2008년 7월 9일 대한민국의 명승 제42호로 지정되었다.
충주 탄금대는 한국의 3대 악성(樂聖) 중 하나인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하던 곳이라 하여 탄금대란 명칭이 붙은 곳이며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 장군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맞서 싸우다 패하여 투신한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명소이다.
대문산(해발 108m) 자락,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남한강이 절벽을 따라 휘감아 돌고 울창한 송림이 우거져 있어 경관이 아름답고, 대(臺)에서 조망되는 남한강과 계명산, 남산 및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그림같이 펼쳐져 절경을 자아내고 있는 곳이다.
탄금대 공원 안에는 조각 작품과 조형물이 여럿 있다.
충주 탄금대에 있는 충혼탑은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충혼탑이라고 하네요.
1955년 11월에 해방 후 전몰한 충주 지역의 장병·경찰관·군속·군노무자 등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을 추진하게 되었으며 1956년 9월에 완공하였다.
그 후에 누수가 되는 등 많이 훼손되어 2004년 5월에 호국영령의 위패안치실을 건립하면서 그 위에 탑을 원형대로 복원하였다.
복원 시에 종전의 석재를 최대한 활용하였는데 자세히 보면 탑신과 기단부의 석재 색깔이 다름을 알 수 있다. 기단부 밑 지하에 호국영령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해마다 6월6일 현충일에는 참배를 한다고.
-해설사님의 안내-
탑신(塔身) 상단부에는 태극기가 새겨져 있으며 달필로 알려진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휘호로 씌어진 『忠魂塔(충혼탑)』이라는 글자 밑에는 李承晩(이승만)이라는 친필 함자(銜字)가 씌어 있다.
팔천고혼위령탑과 충장공 신립장군 상(像)
충혼탑에서 가까운 거리(약 100m 내외)에 팔천고혼위령탑과 충장공 신립장군의 상(像)이 있다.
팔천고혼위령탑은 임진왜란 때인 1592년 음력 4월 도순변사 충장공(忠壯公) 신립(申砬)장군[1546~1592]이 김여물 등 휘하 장졸 8천명과 함께 충주 탄금대 일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적(倭敵)을 맞아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이다.
솟대 등의 조형물
감자꽃 시비(詩碑)
『감자꽃』은 충청북도 충주 출신 권태응 시인의 동요를 묶은 동요집이자 그 안에 수록된 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1968년 5월 5일 충주시 탄금대공원에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감자꽃
자주 꽃 핀 건 / 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 자주 감자
하얀 꽃 핀 건 / 하얀 감자
파 보나 마나 / 하얀 감자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요.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 작품들
탄금대기 비석
1954년에 세워진 충주를 예찬하는 내용의 비석.
비석의 글은 최남선이 짓고 글씨는 서예가 김충현이 썼다.
탄금대기 비석 안내문
송림(松林) 사이로 보이는 남한강
오른쪽 위 사진 속 아치형의 다리는 달천과 남한강의 합수점인 충주탄금대교
우륵선생의 탄금대
탄금정(彈琴亭)
탄금정(彈琴亭) 편액
서예가 죽사 박충식(竹史 朴忠植) 선생의 글씨
열두대
탄금정 바로 옆에 있는 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열두대가 나와요.
신립 장군이 탄금대 전투에서 뜨거워진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강 아래를 12번이나 오르내렸다고 해서 열두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 . 글쎄요, 근거 있는 설(說)은 아닌 듯.
도토리나 밤을 주워 가면 다람쥐나 청설모는 한겨울에 굶어요.
청풍명월의 고장 - 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