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

길상사와 꽃무릇

로제로제 2021. 9. 14. 20:05

길상사와 꽃무릇

 

길상사(吉祥寺) 일주문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

 

꽃무릇 한 송이

 

길상사의 꽃무릇

꽃무릇은 돌 틈에서 나오는 마늘종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석산(石蒜-돌마늘)'이라고도 하며, 만주사화(曼珠沙華-만쥬샤카), 저승꽃 등의 여러 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길상사 극락전(極樂殿)

길상사는 다른 사찰과는 달리 극락전(極樂殿)이 본 법당입니다.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길상사 극락전

 

길상사 꽃무릇

꽃무릇

꽃무릇 - 석산

옛날에는 잎이 지고 난 뒤 알뿌리를 캐내어 갈아서 전분을 채취하여 종이를 서로 붙이거나 책을 엮는데 필요한 접착제로도 이용하였는데 리코닌 성분의 살균력 때문에 이 풀로 붙인 한지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좀이 슬지 않고 또 단청을 할 때 이 전분으로 풀을 쒀서 함께 칠하면 칠이 잘 벗겨지지 않고 잘 썩지도 않아 오래 간다고 합니다.

남대문의 졸속 복원공사에서 단청이 금방 벗겨진 것도 이런 전통방식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꽃무릇은 '피안화(彼岸花 -히간바나)'이며 '저승꽃'

 

일본에서는 이 꽃무릇을 피안화(彼岸花 - 히간바나)라고 부릅니다.

피안(彼岸)은 글자 그대로 강의 건너편 기슭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사바세계(娑婆世界)의 저 쪽에 있다는 정토(淨土)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삼도내(三途川)를 건너기 전에는 차안(此岸-이쪽 기슭), 즉 이승이지만 일단 건너서 강 건너편에 다다르면 피안(彼岸-저쪽 기슭), 다시 말해 저승이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피안화(彼岸花 -히간바나)에는 '저승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네요.

 

또한 일본의 텐메이 대기근(天明の大飢饉, 1782년 ~ 1788년) 당시 워낙 먹을 것이 없자, 독성이 강한 이 꽃무릇(석산)을 데쳐서 먹고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마저도 모두 바닥이 난 후에는 죽음의 상징 꽃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길상사 경내의 작은 인공연못

 

 

 

 

 

꽃무릇

'꽃무릇(석산)'을 상사화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상사화라는 꽃이 엄연히 따로 있기 때문이지요.

 

꽃무릇(왼쪽)과 상사화(오른쪽)

꽃무릇은 꽃이 진 후에 잎이 나오고 상사화는 잎이 말라 죽은 후에 꽃이 피므로 두 꽃은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으니 애타게 그리워할 것이라는 짐작으로 이름을 "상사화"라고 지었나 봅니다.

 

아무튼 '꽃무릇(석산)'을 상사화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입니다.

 

길상사의 꽃무릇 (2021.09.13 촬영)

 

누린내풀(노린재풀이라고도 부름)

누린내풀 - 노린재풀이라고도 하며 포기채 이뇨제로 이용하는데 꽃이 필 때 고약한 냄새가 나므로 붙은 이름.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보살 석상(石像)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조각가의 작품.

 

 

 

진사님들이 열심히 꽃을 촬영하고 있네요.

 

취나물꽃

 

적묵당

 

길상화 보살님 사당

길상사(吉祥寺)는 원래 1970년대 밀실정치가 성행했던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명성을 떨친 '대원각' 이라는 이름의 고급요정 건물이었습니다.

요정의 주인이었던 故 김영한(1916 ~ 1999 法名 길상화)이 당시 추정가격 천억 원의 건물을 시주하여 사찰로 탈바꿈하게 되었습니다.

 

김영한은 16세 때 진향이라는 기명으로 기생이 되었고 시인 백석을 만나 몇 년 간 열애를 나누었지만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결혼에는 이르지 못했고 해방과 남북 분단으로 인해 북에서 생을 마감한 시인 백석.

두 사람은 생전에는 다시 만날 수 없었고, 홀로 남은 그녀는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공부에 매진하다 1950년대 중반 성북동 인근의 배밭 골을 사들여 한식당을 열었는데 뒷날에는 요정정치, 밀실정치가 성하던 시절이어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나중에 법정스님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 당시 가격으로도 어마어마한 재산이었던 대원각을 백석의 시(詩) 한 줄만도 못하다며 기증하게 된 것이 지금의 길상사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김영한(法名 길상화)은 83세에 폐암으로 숨져 길상사 경내에 잠들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손님을 접대하던 용도로 쓰였겠지만 현재는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

 

 

 

꽃무릇 위의 호랑나비

 

진영각(眞影閣)

법정스님이 생전에 기거하시던 곳

 

꽃무릇은 불갑사와 선운사가 유명하지만, 길상사도 꽤 알려져 있습니다.

 

붉게 핀 길상사의 꽃무릇

 

날마다 새롭게

 

 

무정한 사람 - 대금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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