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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불국사

로제로제 2018. 4. 20. 00:07

 

경주 불국사

 

경주 불국사 불이문(不二門)

 

"吐含山佛國寺(토함산 불국사)" 현판 글씨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입니다.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15-1)

 

불국사 창건에 관해 몇 가지 설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는 되지 못한다고 합니다.

신라 법흥왕 15년(서기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眞興王)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였고, 경덕왕(景德王) 10년(751년) 재상(宰相) 김대성(金大城)이 대대적인 중창(重創)공사를 하다가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맡아 혜공왕(惠恭王) 10년(774년)에 완공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경덕왕 10년(751년)에 김대성이 전세(前世)의 부모를 위하여 석굴암을 창건하고,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하여는 불국사를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불국사는 1995년 12월 9일에 토함산 중턱의 암자 석굴암(국보 제24호)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불국사는 2009년 12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502호로 재지정되었다.

 

불국사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의 "佛國寺(불국사)" 라는 현판의 글씨는 서예가이자 화가인 해강 김규진(海岡 金奎鎭 1868~1933)의 글씨다.

해강 김규진은 근대의 대표적 명필로 전국에 많은 필적을 남겼으며 영친왕의 스승으로 서화를 가르쳤다.

해서 · 예서 · 초서 · 행서 등 각 서체와 그림에 능했으며 특히 큰 글씨(大書)로 유명하다.

 

왼쪽에 현수막 게양대와 휠체어 보관함을 스테인레스제(製) 철 구조물로 설치해서 고찰(古刹)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입장료

어 른 (만19세 이상) - 5,000원(개인 단체 불문)
청소년 (만13세~18세)· 군인 - 개인 3,500원 / 단체(20인 이상) 3,000원
어린이 (만7세~12세) - 개인 2,500원 / 단체(20인 이상) 2,000원
7세 이하 어린이 - 10명 미만 1,500원 / 10명 이상 무료

 

무료입장 대상자

만 65세이상 경로증 소지자
장애인 복지카드 소지자(1~3급 동반1인 무료, 4~6급 본인 무료)
국가유공자(신분증 제출자에 한함, 외국인 제외)
조계종 신도증(당해년도 교무금 영수증 필히 지참 요망) 소지자

 

입장시간

3월부터 9월까지는 07:00 ~ 18:00 이지만, 계절에 따라 입장 가능시간이 다릅니다.

 

불국사 안내도

불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本寺)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토함산 불국사 복원기념비(吐含山 佛國寺 復元記念碑)

 

불국사는 창건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고쳐 지으면서 규모가 2,000여 칸으로 커졌으나, 임진왜란 때인 1593년에 왜군의 방화로 건물들이 불타 버렸다.

그 후 광해군 때인 1612년부터 순조 때인 1805년까지 40여 차례의 복원 공사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에 이르면서 점차 복원 공사도 중단되었고, 퇴락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일제 침략을 맞았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대규모의 보수 공사를 하면서 다보탑을 해체 · 수리하였다.

그 때 금동 불상 · 사리 장치 등 많은 유물들이 행방불명되었고, 관련된 기록 자료도 모두 없어져 버렸다.

 

광복 후에 석가탑의 해체 · 복원 등 부분적인 보수작업이 이뤄지다가 1969년 6월부터 기초조사를 포함한 대대적인 복원공사를 1973년 6월까지 벌여 무설전 · 경루 · 관음전 · 비로전 · 회랑 등이 복원되고, 대웅전 · 극락전 · 범영루 · 자하문 등이 새롭게 단청되었다.

1973년 7월 3일 불국사 복원불사 회향식에는 고(故)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하였다.

 

불국사 주요건물 위치도

불국사는 신라인이 염원한 이상(理想)의 불국토(佛國土)를 구현하고자 했던 사찰이다.

 

법화경 <法華經〉에 근거한 석가모니불의 사바세계는 대웅전이고,

무량수경 <無量壽經〉에 근거한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는 극락전이며,

화엄경 <華嚴經〉에 근거한 비로자나불의 연화장 세계는 비로전이다.

 

관음송(觀音松)

 

아름다운 연못 - 반야연지

 

불국사 천왕문(天王門)

 

불국사 천왕문 사천왕(四天王) - 사대천왕(四大天王)이라고도 한다.

사천왕은 불법(佛法)을 수호하는 네 명의 외호신입니다.

 

북방(北方)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 - 비파를 들고 있으며

동방(東方)을 지키는 지국천왕(持國天王) - 보검을 들고 있고

남방(南方)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 - 용(龍)과 여의주를 들고 있으며

서방(西方)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 - 삼지창과 보탑(寶塔)을 들고 있다.

 

경주 불국사 당간지주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12년 10월 22일 지정)

 

불상을 안치했던 좌대로 추정되는 석물(石物)들

가운데 불상 좌대는 밑부분이 많이 손상되었고 좌우의 코끼리상(像)과 사자상(像)도 심하게 파손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보현보살이 흰 코끼리를 타고 있고 문수보살이 푸른 사자를 타고 있는 모습으로 흔히 나타냅니다.

손상이 너무 심해서 문화재로 지정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불국사 경내 주변에 핀 꽃

 

경주 불국사 가구식 석축(佛國寺 架構式 石築) - 보물 제1745호 (2011년 12월 30일 지정)

 

 

극락전 회랑 아래의 가구식 석축

석축(石築)은 건물이나 석탑 등을 짓기 위하여 먼저 조성하는 구조물(건축물)인데 "가구식 석축"은 단순히 돌을 쌓는 것이 아니고 목조 건축물을 짓듯이 돌로 틀을 짜면서 칸칸이 돌을 쌓아 짜 맞추는 석축입니다.

 

아름다운 가구식 석축 위에 지은 건물과 회랑

가운데 범영루의 동쪽(사진 오른쪽)은 자하문으로 연결되는 국보 제23호인 청운교 및 백운교이며, 범영루의 서쪽(사진 왼쪽)은 안양문으로 연결되는 국보 제22호 연화교 및 칠보교입니다.

 

범영루 옆의 연화교 및 칠보교(사진 왼쪽)

지금은 메워져 있지만 원래는 범영루, 연화교 및 칠보교(국보), 청운교 및 백운교(국보) 밑으로 "구품연지(九品蓮池)"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합니다.

 

불국사 범영루(佛國寺 泛影樓)

범영루는 대웅전과 극락전의 경계 회랑(回廊) 끝에서 앞으로 튀어나온 누각(樓閣)입니다.

범영(泛影)은 '그림자가 물 위에 뜬다(비친다)'는 뜻으로 아주 오래전에는 이 범영루 밑이 연못이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범영루의 기둥을 받치는 돌기단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각기 8장의 판석으로 조립하였는데 가운데 부분을 홀쭉하게 만들어 수미산(須彌山)의 형태를 나타낸 특이한 모양입니다.

원래는 수미범종각(須彌梵鐘閣) 종루로 쓰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법고(法鼓)만 있습니다.

 

경주 불국사 연화교(蓮華橋) 및 칠보교(七寶橋) - 국보 제22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안양문(安養門)과 연결된 돌계단다리인 이 다리는 아래쪽이 연화교이고 위쪽이 칠보교이다.

아래쪽 연화교는 디딤돌마다 연꽃잎을 새겼다.

연화교와 칠보교라는 이름은 극락세계가 연화와 칠보로 장엄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안양문의 안양(安養)은 극락(極樂)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보존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경주 불국사 청운교(靑雲橋) 및 백운교(白雲橋) - 국보 제23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자하문(紫霞門)과 연결된 이 다리는 아래쪽이 백운교이고 위쪽이 청운교이다.

'자하문(紫霞門)'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몸에서 발산되는 상서로운 자금색 광채(紫金光)가 서려 있는 문'이라는 의미이다.

원래 백운교의 아치 밑으로는 지금은 메워져 있지만 "구품연지(九品蓮池)"로 흘러드는 물이 지나갔다고 한다.

지금은 보존을 위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불국사의 청운교 및 백운교와 연화교 및 칠보교가 분명히 계단인데 왜 다리(橋)라고 했는가에 대해 '속세로부터 부처님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럴듯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설명입니다.

 

첫째, 범영루(泛影樓) 밑으로는 원래 "구품연지(九品蓮池)"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범영루(泛影樓)는 "그림자가 뜨는(비치는) 누각"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운교 및 백운교와 연화교 및 칠보교의 아치형 문은 연못으로 물이 흘러들어 오고 나가도록 만든 물길이었습니다.  

그러니 물을 건널 수 있게 만든 것은 "다리"이므로 당연히 "다리(橋 교)"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속세로부터 부처님의 세계로, 즉 속계(俗界)에서 불계(佛界)로 넘어서는 경계는 어느 사찰에서나 마찬가지로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일주문(一柱門)입니다.

일주문(一柱門) 안으로 들어서는 때에 이미 부처님의 세계(佛界 불계)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찰에 들어오고 나갈 때에 일주문 앞에서 합장(合掌)하며 예(禮)를 갖추는 것이지요.


불국사 좌경루(左經樓)

자하문 오른쪽 옆으로 회랑 동쪽 끝에 있습니다.

경루(經樓)는 원래 경전(經典)을 보관하는 곳인데 지금은 경루로 쓰이지는 않고 목어(木魚)와 운판(雲版)이 있습니다.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

 

불국사 경내 주변에 핀 꽃

 

경주 불국사 대웅전(大雄殿) - 보물 제1744호 (2011년 12월 30일 지정)

 

석가여래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으로, 불국사 경내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로 건물 내부는 바닥에 마루를 깔고, 천장은 우물반자로 마감하였다.

 

현재의 대웅전 건물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불타버린 터 위에 효종 10년에 재건되었다가 다시 100년뒤인 조선 영조41년(1785년) 천룡사의 채원(采遠)스님이 중창한 건물이며 조선시대 후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다.

<b대웅전은 중창을 할 때 쇠못 하나 쓰지 않고 완전하게 조립식으로 얽어 만든 목조 건물이다.

 

이 건물은 1765년(영조 41)에 중창(重創)된 것인데, 중문(中門)인 자하문과 함께 당시 불국사의 건축을 대표하고 있다.

이 건물의 앞에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다보탑과 석가탑이 좌우로 놓여 있고, 둘레에는 1973년에 복원된 회랑(回廊)이 둘러져 있어서 부처를 모신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해 놓고 있다.

- 백과사전에서 -

 

불국사 대웅전 내부

 

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慶州 佛國寺 靈山會上圖 및 四天王 壁畵) - 보물 제1797호 (2013년 2월 28일 지정)

대웅전 내부에는 보물 제1797호로 지정된 경주 불국사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가 있습니다.

 

천장의 형식은 우물천장이며 작은 칸 하나하나에 수많은 연꽃이 그려져 있는데 이렇게 천장에 연꽃을 그린 이유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었을 때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하는 법화경에 의해 이를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대웅전(大雄殿)과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차이

원래 대웅전(大雄殿)의 격을 높여서 대웅보전(大雄寶殿)이라고 할 때는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을 모신다.

 

불국사 대웅전 목조 삼존불 상(像)

정면에서 바라볼 때, 가운데가 주불(主佛)인 석가모니부처이고 왼쪽이 제화갈라보살이며 오른쪽은 미륵보살이다.

제화갈라보살 옆(왼쪽)은 석가모니부처의 10대 제자 중 한 사람이며 사촌인 아난존자(阿難尊者)이고 미륵보살 옆(오른쪽)은 역시 10대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마하가섭존자(摩訶迦葉尊者)이다.

 

경주 불국사 다보탑(多寶塔) - 국보 제20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다보탑의 정식 이름은 다보여래 상주 증명탑(多寶如來常住證明塔)이다.

과거의 부처님인 다보여래부처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줄여서 '법화경'이라고도 함)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땅에서 보탑(實塔)이 솟아나오게 하였다.

석가여래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자 보탑(實塔)이 땅에서 솟아나와 석가여래의 말이 진리임을 증명하였다고 한다.

다보탑이란 이름은 이 내용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다보탑은 일반적인 탑의 모양을 따르지 않은 특이한 형태로 이러한 형태의 탑이 그 이전과 그 이후에 만들어 진 적이 없다.

목조 건축물, 특히 누각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한 극히 창조적인 탑이다.

돌계단 위에 4마리의 돌사자상이 있었는데 3마리는 그 행방을 알 수 없다.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 국보 제21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이 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한다.

기단부나 탑신부에 아무런 조각이 없어 간결하고 장중하며,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워 전체의 균형도 알맞고 극히 안정된 느낌을 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신라의 삼층 석탑들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려시대에 지진으로 두 번이나 무너져서 1024년과 1038년에 중수했다.

불국사 삼층석탑은 다른 이름으로 석가탑(釋迦塔) 또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한다.

석가탑(釋迦塔)은 석가여래 상주 설법탑(釋迦如來常住說法塔)의 줄인 명칭이다.

무영탑(無影塔: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탑이란 이름은 탑을 짓기 위해 백제에서 온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전설에 따라 붙여진 별명이다.

 

1966년 9월 도굴범에 의한 훼손사건이 발생하여 손상됨에 따라 1966년 10월에 탑신부의 해체수리 작업이 시작되었고, 그 해 12월에 완전하게 복원되었다.

 

 

 

 

불국사 삼층석탑 내 발견유물(佛國寺 三層石塔 內 發見遺物) - 국보 제126호 1967년 9월 16일 지정)

해체수리 과정 중, 탑 내부의 사리공 안에서 사리를 비롯한 사리용기와 각종 장엄구 및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無垢淨光大陀羅尼經"이 발견되었는데, 특히 이 다라니경은 당나라의 측천무후 자(則天武后 字)를 사용한 목판인쇄물로 학계에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보 제126호로 일괄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다보탑과 석가탑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法華經)》의 내용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석가탑과 다보탑이 동서(東西)에서 마주 대하고 있는 불국사 대웅전 앞뜰은 석가여래와 다보여래가 함께 임(臨)하고 있는 영산도량(靈山道場)이 된다.

 

불국사 무설전(無說殿)

 

무설전의 편액 글씨는 원광 경봉(1892~1982)스님의 글씨다.
경봉스님은 1935년 통도사 주지가 되었고 사찰의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가장 먼저 사용하신 스님이다.

 

 

대웅전 뒷편에 무설전이 있다. 경전을 강의하는 강당이다.

여러 차례 고쳐져서,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 건축 양식이다.

무설(無說)이란 말이 없다는 뜻인데, 강의를 하는 강당의 이름이 '무설(無說)'인 것은 불교의 깊은 진리가 말로는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설전에는 김교각(金喬覺) 스님의 등신상(等身像)이 있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24세에 출가하여 당(唐)나라로 유학한 김교각 스님은 중국 당나라 구화산에 화성사(化城寺)를 창건하고, 지장보살로 높이 추앙받았다.

스님 생전에 '언제 신라로 돌아가느냐'는 질문에 '1,300년 후에 돌아갈 것이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1997년 스님 탄생 1,300년이 되던 해 구화산 화성사로부터 등신상을 기증받아 무설전에 모셨다.

1,300년 후에 모든 것이 달라질지도 모르는데 그런 예언을 했다는 것은 신기한 이야기다.

 

 2009년 5월 태국 왕실이 푸미폰 국왕 탄신 80주년을 기념해 세계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든 불상을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무설전에 봉안했다.

 

불국사 관음전(觀音殿)

 

관음전은 751년에 창건되어 조선 성종 원년(1470)에 중수되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선조 37년(1604)에 중창 되었으며 다시 숙종 21년(1695), 44년(1718)에 두 차례 중창되었다가 그 후 폐허가 된 것을 1973년에 복원하였다.

무설전 뒤편 동쪽 가장 높은 곳에 있다.

 

불국사 관음전의 현판은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3~1981)선생의 글씨이다.
소전선생은 추사 김정희와 소치 허련선생의 계보를 잇는 근대 서예의 대가이다.

 

불국사 관음전 내부

관음전은 자비의 상징인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신 불전이다.

관세음보살은 남쪽 바다에 솟아있는 보타락가산(普陀洛迦山)에 거주하면서 사바세계를 굽어보며 중생을 구원해 준다고 한다.

 

불국사는 한국 33 관음성지 중 제23호 사찰입니다.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慶州 佛國寺 金銅毘盧遮那佛坐像) - 국보 제26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비로전(毘盧殿)과 내부의 금동비로자나불좌상(金銅毘盧遮那佛坐像)

이 불상은 진리의 세계를 두루 통솔한다는 의미를 지닌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형상화한 것이다.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은 국보 제26호이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7호),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비로전은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모신 법당이다.

대적광전 또는 화엄전이라고도 한다.

화엄종 사찰에서 주된 불전(본전)인 경우에는 대적광전이라고 하고, 주된 불전이 아닌 경우에는 비로전이라고 한다.

 

불국사 복원 시에 중창된 건물로 불국사 무설전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비로자나불은 안치하였으며 건물의 양식은 고려 시대 양식으로 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인데 측면의 중앙 칸이 비교적 넓어 건물평면은 정방형에 가까운 장방형이다.

설계는 불국사복원위원회 설계팀이 하였고 도편수는 이광규, 신응수 양씨가 담당하였으며 단청은 한석성씨가 하였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보물 제61호)이 보존되어 있는 보호각

보물 제61호 경주 불국사 사리탑이 보존되어 있는 보호각은 비로전 왼쪽에 있는데 지금의 자리는 원래의 위치가 아니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佛國寺 舍利塔) - 보물 제61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경주 불국사 사리탑은 전체적으로 장식이 아름답고 단아하여 겉모양은 석등과 비슷하며,「불국사사적기(佛國寺 事蹟記)」에 기록된 "광학부도( 光學浮屠)"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몸돌은 여느 승탑이나 석등과는 달리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원통 모양으로, 위아래에 연꽃과 보상화(寶相花)를 새긴 기둥을 조각하여 4면으로 나누었다.

 

각 면에는 얕게 오목새김한 불감(佛龕)을 두고, 그 안에 여래좌상(如來坐像) 2구와 함께 보살입상(菩薩立像) 2구를 돋을새김하였다.지붕돌은 몸돌 윗부분에 조각된 연꽃무늬 위에 올려져 있다.

돌의 재질이 연약하여 곳곳에 풍화 흔적이 남아 있고, 일부분이 파손되었지만, 비교적 완전한 모습이다.

 

이 사리탑은 신라 승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형(圓堂形)에서 벗어나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체적인 조형과 조각 수법으로 보아,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여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불국사 사리탑도 일제강점기에 고초를 겪었다.

을사늑약 이듬해인 1906년 한 일본인이 스님들(당시 불국사는 퇴락하여 두어 명 정도의 스님만 있었다고 함)을 위협하며 적은 돈을 쥐어 주고 이 사리탑을 일본의 우에노 세이요오켄(上野 精養軒 - 지금까지도 존속하고 있음)이라는 고급 서양요리점의 정원 장식용으로 밀반출하였다.

 

그 후 일본 내에서 여기저기로 팔려 다니다가 마지막 취득자였던 제약회사 사장 나가오 킨야(長尾欽彌)가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하여 1933년 7월 불국사로 간신히 돌아오게 되었다.

 

불국사 나한전(羅漢殿)

 羅漢殿(나한전) 편액은 탄허(1913~1983)스님의 글씨.

탄허스님은 독립운동가 율재 김홍규선생의 아들.

 

불국사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16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을 줄인 말이다.

아라한은 산스크리트어 아르한(arhan)을 음역한 것으로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뜻한다.

사찰마다 16 나한, 500 나한 등 봉안하는 수는 다양하다.

아라한은 깨달은 사람이므로 부처와 비슷한 뜻이지만 대승불교가 발달하면서 부처보다 격이 낮아졌다.

따라서 주된 불전과 떨어져 있으며 전각의 규모도 훨씬 작다.

나한전에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ㄷ'자 형태로 불단이 배치되어 있다.

 

나한전 옆의 돌탑 무더기

 

중생의 갖가지 소원을 다 이루게 해 주소서!

 

법화전(法華殿) 터

 

불국사 극락전(極樂殿)

불국사 極樂殿(극락전)의 편액글씨는 구하천보(九河天輔 1872~1965) 스님의 글씨다.

 

극락(極樂)은 극락정토 또는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정토(淨土)로 괴로움이 없으며 지극히 안락하고 자유로운 세상이라는 뜻이다.

극락전은 아미타 부처님을 모신 건물이다.

사찰에 따라 극락보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무량전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아미타불)는 국보 제27호이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慶州 佛國寺 金銅阿彌陀如來坐像) - 국보 재27호 (1962년 12월 20일 지정)

불국사 극락전에 모셔진 금동불로 높이는 1.66m이다.

전체적으로 근엄하고 장대한 모습이며 신체나 옷주름도 비교적 사실적(寫實的)으로 표현하였다.

등 뒤에는 머리 배면과 두 어깨 아래에 신광과 두광을 부착시킨 흔적이 남아 있다.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26호),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제28호)과 함께 통일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불린다.

 

극락전 현판 뒤에 숨어있는 멧돼지 조각상(像)

어느 관광객이 우연히 발견하여 2007년 2월 대구 영남일보에 기사로 실렸다.

사찰의 전각을 지으면서 조각상을 두는 경우는 보통 용이나 봉황인데 멧돼지상은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

이 멧돼지상은 받침대를 놓고 보지 않는 한, 눈 부위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극락전 중수기문에 의하면 이 조각은 1750년(조선 영조 26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극락전 앞 福(복)돼지 像(상)

극락전 현판 뒤의 숨겨진 멧돼지가 유명해지자 사찰 측이 내방객을 배려하여 극락전 앞에 복돼지상을 만들어 놓았다.

불국사를 찾는 많은 내ㆍ외국인이 복돼지상을 만지며 사진을 찍고 행운을 빈다.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

 

불국사 범종각(梵鍾閣)

 

경주 불국사 석조(佛國寺 石槽) - 보물 제1523호 (2007년 9월 11일 지정)

(불국사박물관 앞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불국사 석조는 일반적인 직사각 형태에 비해 네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어 꽃잎 형태를 갖췄고 안팎으로 여러 가지 무늬를 조각해 전체적으로는 커다란 연꽃을 연상케 하며 독특하고 화려하다.

신라 최대의 석조로, 석조의 규격은 길이 265cm, 폭 1,231 높이 56cm이며 아래로 내려갈수록 점차 좁아져 입면상으로는 사다리꼴 형상을 이루고 있다.

석조 바닥에는 지름 약 3.5cm의 출수구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수조의 형상이 원형인 백제시대의 석조와 달리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형상인 직사각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면에 조각이 있는 점과 다른 직사각형의 석조와는 달리 모서리를 둥글게 한 것이 특이하다.
특히 내부 바닥면의 화려한 연화문 조각은 통일신라시대 불교미술의 뛰어난 조형의식과 높은 예술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불국사에는 이 석조 외에도 2개의 석조가 더 있다고 한다.

 

2007년 9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98호에서 보물 제1523호로 승격되었다.

 

 

이 석조(石槽 돌로 만든 물통)는 청운교 · 백운교 남쪽, 경내 남동쪽 진입로 부근에 놓인채 속칭 감로수(甘露水) 터로 불리며 내방객을 위해 샘물을 받는 물통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하마터면 문화재적 가치를 모르고 계속 방치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자원봉사로 문화재 해설을 해 주고 있던 경북관광개발공사 감사팀장 강정근씨의 건의로 문화재의 가치가 높음을 알게 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되었다.

 

경주 불국사 성림당 월산 대종사(聖林堂 月山 大宗師) 부도

 

2018년 11월 15일 재촬영

 

불국사 부도(浮屠) 군(群)

 

2018년 4월 10일과 2018년 11월 15일 두 차례에 걸쳐 촬영

 

세계가 인정한 한국불교의 대표성지... 불국사

 

 

 

불국사의 봄 - 노래  남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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