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서산 간월암

로제로제 2018. 3. 31. 04:31



서산 간월암(看月庵)


간월암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



간월도 버스정류장

간월암에서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장 - 배차간격 대략 1시간 정도

서산 종합버스터미널에서 여기까지는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해요.



간월도 어리굴젓 기념탑

간월암으로 향하는 길 옆에 있지요.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간월암 원경


간월암은 과거 피안도(彼岸島) 피안사(彼岸寺)로 불리며 밀물 시 물 위에 떠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蓮花臺) 또는 낙가산(落伽山) 원통대(圓通臺)라고 부르기도 했다.

- 안내문에서 -



서산시 관광홍보 안내판과 간월암 그림


고려 말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看月島)라 하였다.

이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간월암이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만공선사는 이곳에서 조국해방을 위한 천일기도를 드리고 바로 그 후에 광복을 맞이하였다고 한다.



이정표



마침 썰물 때라서 걸어서 건널 수 있었지요.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서 섬과 육지로 변화되는 보기 드문 자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특히 주변의 섬들과 어우러진 낙조와 함께 바다 위로 달이 떠올랐을 때의 경관이 빼어나다고 한다.

- 안내문에서 -



갈매기도 날면서 환영인사를 하는 듯...


무학대사와 긴월암

간월암은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리에 있는 작은 섬에 자리잡고 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한 암자이다.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간월암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작은 암자
를 지어 무학사라 부르던 절이 자연 퇴락되어 폐사된 절터에 1914년 송만공 대사가 다시 세우고 간월암이라 불렀다.



이곳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가 이성계에게 보낸 어리굴젓이 궁중의 진상품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 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시에 간월도리 어리굴젓기념탑 앞에서 벌어진다.

 

법당에는 무학대사를 비롯하여 이곳에서 수도한 고승들의 인물화가 걸려 있다.

 이 암자는 바닷물이 들어오면 작은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린다.

 이곳에서 보는 서해의 낙조가 장관을 이루어 관광객에게 큰 즐거움을 준다.

- 백과사전에서 -



소원바위에 동전을 붙이고 지폐도 두고 갔네요.



간월암 입구



간월암 입구의 장승들



간월암 입구의 문

다른 사찰의 일주문에 해당되겠지요?






간월암 대웅전


무학대사와 간월암


무학대사가 어머니 태중에 계실 때, 부친이 보던 일이 잘못되어 빚이 생겼는데 빚을 갚을 길이 없어 피신하였다.

사령이 부인을 대신 호송하여 서산 현감에게 가던 중, 갑자기 산기를 느껴 쉴 곳을 찾게 되었으나 때는 엄동설한이라 산천엔 적설인데 오직 한 곳이 기이하게 눈이 없어 마침내 그곳에서 몸을 풀고 아이를 옷가지로 덮어두고 현감에 이르니 원이 부인의 몸이 몹시 피로해 함을 이상히 여겨 그 연유를 물어 알고 인간의 도리가 어찌 이럴 수 있으랴 하며 사령을 아이 있는 곳에 보내니 큰 학(鶴)이 두 날개로 깔고 덮어 아이를 보호하고 있는 지라 돌아와 이 사실을 고하니 원이 크게 상서로운 일이라 하며 부인을 보고 아이 이름을 무학(舞鶴)이라고 지어주었다.

이십 세에 출가한 스님은 이곳 간월암에 토굴을 지어 열심히 수도하던 차에 달을 보고 도를 깨치니 나옹스님이 더 배을 것이 없다 하며 법호를 무학(舞鶴)이라고 지어주었다.



간월암


고려의 국운도 저물어 갈 무렵, 스님께서는 함경도 고원 백연암에서 이성계에게 500일 기도를 올리게 하였으니 기도 마치는 달에 이성계의 서까래 세 개를 짊어진 기이한 꿈을 해몽하고 이미 이태조가 될 것을 짐작하여, 스님께서는 한양 터를 잡고 창여문(蒼如門)이란 이름으로 경복궁을 28칸으로 지으니, 이미 28대의 왕운을 짐작한 것이었다.

당시에는 간월도 황도 등을 사폐지로 정하여 스님께 드렸으며 그 후 조선왕조의 배불정책으로 암자가 완전 폐사된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을 하고 이곳에서 조국광복 1000일 기도를 마치면 광복을 맞으리라 예언을 한 뒤, 광복기도를 마친 다음 날 해방을 맞이하였으니 조선의 건국과 해방을 함께한 의미 있는 기도도량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며 성철스님 등 많은 수도인들이 이곳 간월암에서 득력을 하였던 것이다.

- 안내문에서 -




간월암 대웅전 내부






보호수

팽나무    수령 150년     높이 12m









보호수

사철나무    수령 250년    높이 3.5m






간월암 산신각(山神閣)과 내부






간월암 경내에 핀 꽃들






소원지를 묶어 놓은 모습






간월암 구내매점



간월암 주변 바다



서산 9경(九景)



간월암에서 나가는 길...



간월도 항구



간월도 바닷가



점심식사는 영양굴밥(1인당 12,000원 -  2인 이상 주문)을 시켰는데 "굴전"도 서비스로 내오고 가격에 비해서 아주 만족할 수 있었지요. 



간월항 어시장



마른 생선



음식점  -  마늘각시

서산시청에서 발행한 관광안내 책자에도 나오길래 어렵게 찾아가서 저녁식사로 "마늘각시 한정식(1인 15,000원)"을 주문했는데 가격에 비해서는 맛이 별로...


 

해뜨는 서산



눈물의 연락선(淚の連絡船) - 조아람 전자바이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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