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해인사 장경판전 입구
합천 해인사 (陜川 海印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로서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4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때의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우두산(牛頭山:가야산)에 초당(草堂)을 지은 데서 비롯된다. 그들이 선정(禪定)에 들었을 때 마침 애장왕비가 등창이 났는데 그 병을 낫게 해주자, 이에 감동한 왕은 가야산에 와서 원당(願堂)을 짓고 정사(政事)를 돌보며 해인사의 창건에 착수하게 하였다.
순응이 절을 짓기 시작하고 이정이 이었으며, 그 뒤를 결언대덕(決言大德)이 이어받아 주지가 되었다.
918년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당시의 주지 희랑(希郞)이 후백제의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國刹)로 삼아 해동(海東) 제일의 도량(道場)이 되게 하였다.
- 백과사전에서 -
세계문화유산
해인사 고려 대장경 판전 비
해인사 반야사지 원경왕사 비 (보물 제128호 )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로 1961년 현 자리로 옮겼다.
해인사 길상탑과 부도
가야산 해인사(伽倻山 海印寺) 일주문
해인사 고사목
해인총림(海印䕺林) 봉황문
해인사 소원나무
해인사 국사당 내부
해인사 해탈문
해인사 범종각
해인사 구광루(九光樓)
해인사 보경당
해인사
한국 33관음성지 중 제19호 사찰입니다.
해인사 대적광전(大寂光殿)
해인사 대적광전 내부
정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주존으로 하여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해인사 대적광전의 4면 편액
해인사 대적광전은 건물 4면에 현판(편액)이 걸려 있는데 , 이름도 글씨체도 각기 다르다.
정면(남쪽)엔 "대적광전(大寂光殿)", 동쪽 면엔 "금강계단(金剛戒壇)", 서쪽 면엔 "법보단(法寶壇)", 북쪽 면엔 "대방광전(大方廣殿)"이라는 현판이다.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동곡당 일타대종사 열반 18주기 다례재
일시: 불기 2561년(서기 2017년) 12월 9일(토)(음 10월22일) 오전 10:00
해인사 삼층석탑, 석등
해인사 응진전(應眞殿) 내부
명부전(冥府殿)과 내부 모습
해인사 어수정(御水井)
어수정이란 왕이 주로 사용한 우물을 가리키는 말로 전국 각지에 다수 존재하고 있다.
어수정의 예로는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상구리의 단종 어수정, 연천군 미산면의 숭의전 어수정, 합천 해인사의
어수정이 있다.
해인사 비로전(毘盧殿)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을 비로전이라고 한다.
해인사 장경판전 (세계문화유산 국보 제52호 )
해인사 대장판전 (세계문화유산 국보 제32호)
팔만대장경은 몽고의 침입을 불교의 힘으로 막기위해 만든 불경목판으로 강화도에서 선원사를
거쳐 태조7년 (1398) 이것 해이사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특히 이팔만여의 법문은 장경판전(국보제52호)에 보관하고 있는데 이 역시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세계 유일의 전용 건물로
눈여겨 볼만하다.
해인사 법보전 내부
해인사 학사대(學士臺)
학사대는 신라 말기의 문장가이자 학자였던 고운 최치원(857~?)이 만년에 가야산에 은거하여 시서(詩書)에 몰입하던 곳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연주할 때 수많은 학이 날아와 경청했다고 한다.
당시 거꾸로 꽂아 두었다고 전해지는 전나무 지팡이가 지금까지 살아 있으며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가지가 아래로 쳐저 거꾸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해인사 독성각(獨聖閣)
점심 공양
해인사에서 참배하고... 오후 1시경 (순천 송광사로 출발)
팔만대장경에 빛나는 한국의 법보사찰 해인사!